사랑하는 파리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은 추석을 맞아 함께 예배드리는 주일입니다. 한국에서는 지금쯤 가족들이 고향을 찾고 돌아가는 길 일것입니다. 고속도로에는 자동차가 가득하고, 시장에는 햇과일과 햅쌀이 나오고, 가족들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파리에서 추석을 맞습니다. 한국과 프랑스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은 같습니다.
추석이 되면 이상하게 고향 생각이 납니다. 어머니가 차려 주시던 음식, 아버지의 모습, 어릴 때 함께 뛰어놀던 형제와 친척들, 그리고 그때의 식탁이 생각납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음식 자체가 아닐 것입니다. 송편의 맛만 그리운 것이 아니라, 그 송편을 함께 먹었던 사람들이 그리운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그 그리움을 신앙으로 연결시켜 줍니다. 기억하고, 전하고, 세우십시오.
시편 78편 3-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것이라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이라고요.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기도했고, 성경을 읽어 주었고, 우리의 손을 잡고 교회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에는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모님일 수도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일 수도 있고, 교회학교 선생님일 수도 있고, 어린 시절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던 이름 모를 성도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있는 것은 누군가가 우리보다 먼저 믿음의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추석 하면 무엇이 생각납니까? 송편입니다. 송편의 정확한 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고려시대부터 비슷한 떡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조선 후기에는 추석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해 수확한 쌀로 빚었으니, 송편에는 한 해의 열매를 바라보며 감사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송편의 정말 아름다운 점은 다른 데 있습니다. 송편은 혼자 만드는 음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빚고, 어머니가 빚고, 아이들이 옆에서 따라 합니다. 어떤 송편은 예쁘고 어떤 송편은 조금 이상하지만, 그래도 함께 웃으며 빚습니다. 그렇게 송편 하나를 만들면서 한 세대의 손에서 다음 세대의 손으로 기억이 전달됩니다. 그래서 송편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가족의 기억을 담은 음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름달을 기다리는 추석의 음식인데 왜 모양은 반달일까요? 정확한 역사적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여러 설화가 전해집니다. 보름달은 이미 가득 찬 달이지만, 반달은 아직 가득 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반달은 앞으로 차오릅니다. 저는 이 모습이 우리의 신앙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가정도, 믿음도, 교회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반달이 조금씩 차오르듯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의 믿음도 자라가고, 우리가 받은 믿음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 자라갑니다.
추석을 생각하면서 한 작품을 떠올려 봅니다. 미국의 화가 노먼 록웰이 1943년에 그린 《Freedom from Want》, 우리말로 흔히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는 작품입니다. 그림 속 큰 칠면조가 식탁 한가운데 놓여 있고, 가족들이 그 주변에 둘러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칠면조가 아니라 사람들의 얼굴입니다. 가족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한 해의 풍성한 식탁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41년 의회 연설에서 제시한 ‘네 가지 자유’ 가운데 하나인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제로 그려졌습니다. 전쟁의 시대에 사람들은 먹을 것이 부족했고 가족의 안전도 위협받았습니다. 그런 시대에 록웰은 왜 풍성한 식탁을 그렸을까요? 사람이 원하는 것은 음식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함께 먹을 가족을 원하고, 함께 웃을 사람이 필요하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 합니다.
저는 이 그림을 보면서 추석의 식탁을 생각합니다. 추석에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단순히 풍성한 음식이 아닙니다. 함께 앉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송편 하나를 놓고 함께 웃는 것, 밥 한 그릇을 함께 먹는 것,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것이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식탁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장소가 아니라, 사랑을 나누고 용서를 나누고 기억을 나누고 신앙을 전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나는 지금 풍성한 식탁을 누리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내 주변에 아직 식탁에 앉지 못한 사람은 없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질문입니다. 내가 먹을 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 주는 것, 이것이 긍휼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나 혼자 누리지 않고 누군가에게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주 사람들과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죄인들과도, 외면받던 사람들과도 함께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식탁은 사람을 구분하는 식탁이 아니라 사람을 품는 식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추석 식탁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억하는 식탁이 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식탁이 되어야 합니다.
신명기 6장 6-7절은 말씀합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그런데 언제 가르치라고 합니까? 집에 앉아 있을 때, 길을 갈 때, 누워 있을 때, 일어날 때, 즉 삶 속에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식탁도 신앙교육의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자녀들과 식사하신다면 이렇게 이야기해 보십시오. “얘야, 오늘은 추석이란다. 한국에서는 이날 가족들이 함께 모였단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해 보십시오. “그런데 우리 가족에게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가 있단다. 할머니가 너를 위해 기도하셨단다. 엄마와 아빠도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단다. 우리 가족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하나님의 은혜란다.”
우리 아이들이 프랑스에서 자란다고 해서 신앙의 뿌리를 잃어버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어보다 프랑스어가 더 편해도 괜찮고, 한국의 명절 풍습을 다 똑같이 지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곧 감사와 가족과 나눔과 부모 공경과 이웃 사랑,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왜 파리에 와 있습니까? 단순히 한국을 떠나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에 보내셨다고 믿습니까? 예레미야 29장 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하나님께서는 타국에 있는 백성들에게 그곳의 평안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타국살이는 단순히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파리감리교회의 식탁은 한국에서 온 사람만 앉는 식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유학생도, 혼자 사는 사람도, 처음 파리에 온 사람도, 아픈 사람도, 마음이 지친 사람도 앉을 수 있어야 하고, 우리의 프랑스 이웃도 언젠가는 그 식탁에 앉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누군가에게 파리에서 만난 따뜻한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한국교회에서 받은 좋은 유산이 있습니다. 새벽을 깨우며 기도했던 기도의 유산, 성경을 읽고 말씀을 붙들었던 말씀의 유산,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찾아갔던 섬김의 유산, 내가 부족해도 한 끼를 나누었던 나눔의 유산입니다. 이것을 파리에서 다시 세워야 합니다. 다만 한국교회의 모든 것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은 이어받고 부족했던 것은 말씀 앞에서 내려놓으며, 더 겸손하고 더 투명하고 더 따뜻하고 더 열린 교회로 세워 가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노먼 록웰의 그림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풍성한 음식만이 아니라 사람이 함께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추석의 송편에서도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떡만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빚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식탁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음식이 아니라, 그 자리에 누가 앉아 있는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런 식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상처 입은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식탁, 외로운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식탁, 죄인이 돌아올 수 있는 식탁, 낯선 사람이 가족이 될 수 있는 식탁.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식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추석을 맞아 세 가지를 마음에 새깁시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 믿음을 전해 준 부모와 조부모를 기억합시다. 우리를 위해 기도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모든 은혜의 배후에 계셨던 하나님을 기억합시다.
전하십시오. 자녀에게 신앙을 전하십시오. 감사와 나눔의 아름다운 정신을 전하고,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십시오.
세우십시오. 이 파리 땅에 기도의 교회, 말씀의 교회, 섬김의 교회를 세우십시오. 그리고 누구든지 와서 앉을 수 있는 하나님의 식탁을 세우십시오.
송편은 반달입니다. 아직 가득 차지 않았지만 차오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가정도, 교회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차오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자녀에게 전한 한마디가 내일 그 아이의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군가에게 내어준 식탁의 한 자리가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세우는 작은 교회가 누군가에게는 파리에서 만난 고향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추석에는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받은 믿음을 전하고, 우리의 식탁을 넓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눕시다. 고향을 떠나온 우리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고향집의 하나님이 파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한국에서 우리와 함께하셨던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그리움을 사명으로 바꾸십시오. 우리의 식탁을 사랑의 식탁으로, 우리의 가정을 믿음의 가정으로, 우리의 교회를 하나님의 식탁으로 만들어 갑시다.
기억하고, 전하고, 세우는 사람들. 그리고 함께 먹고,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 그것이 오늘 추석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아름다운 사명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