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 에베소서 6장10-13절

제 목 : 시들어도 다시 살아나는 믿음


말씀요약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제가 직접 경험한 작은 화분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돌보시며, 우리가 어떻게 믿음으로 교회를 세워 가야 하는지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작년에 제가 키우던 화분 가운데 거의 말라 죽어 가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잎사귀는 시들고 줄기는 힘을 잃었으며, 흙은 메말라 있었습니다. 더 이상 살아날 가능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면 아마 완전히 말라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화분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화분에 새로운 흙을 채우고 거름을 주었습니다. 물을 주고, 햇볕이 얼마나 드는지 살피고, 날마다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말라 있던 줄기에서 새잎이 돋아났습니다. 잎사귀가 점점 풍성해지고 줄기에 힘이 생겼습니다. 마침내 꽃까지 피었습니다. 죽은 것처럼 보였던 화분이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면서 참 기뻤습니다.

그런데 올여름은 달랐습니다. 유난히 뜨거운 폭염이 찾아왔습니다. 해충까지 식물을 괴롭혔습니다. 지난해 그렇게 정성껏 돌보아 살아났던 화분들이 다시 시들기 시작했습니다. 잎이 마르고 줄기가 약해졌습니다. 어떤 화분은 아무리 물을 주고 돌보아도 회복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화분 하나하나를 살펴보며 물을 줍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과연 이 화분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돌보는데도 결국 죽고 마는 것은 아닐까?’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우리 자신과 교회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믿음이 자랍니다. 성도들의 사랑과 섬김 속에서 위로를 얻고 다시 일어섭니다. 한때는 낙심하고 쓰러질 것 같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된 경험도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길을 걷다 보면 다시 어려움을 만납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며 전도하는데도 생각처럼 열매가 맺히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오해와 실망이 찾아오며, 지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순간도 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다고 해서 어려움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다고 해서 시험을 받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시들어 가는 화분을 보면서 돌보기를 포기해야 하겠습니까? 어려움을 겪는 성도를 보면서 믿음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돌아서야 하겠습니까? 교회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셨다고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세 가지 사실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시며 자라게 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돌보심 속에서도 시험과 영적인 싸움은 계속됩니다.

셋째,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견디며 서로를 돌보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은 시들어 가는 생명도 돌보십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 말씀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서 왜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려 줍니다. 선한 일을 한다고 해서 언제나 즉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화분에 물을 주었다고 해서 다음 날 곧바로 꽃이 피지는 않습니다. 거름을 주었다고 해서 하루 만에 줄기가 굵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식물은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뿌리를 통해 양분을 흡수하며, 때가 되어야 새잎을 내고 꽃을 피웁니다.

우리는 꽃을 보고 싶어 하지만 식물은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열매를 기다리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믿음의 뿌리가 깊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배에 많은 사람이 모이기를 바랍니다. 전도한 사람이 교회에 정착하고, 다음 세대가 믿음 안에서 성장하며,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봉사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한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가 늘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말씀을 통해 변화되는 것, 상처받은 사람이 위로를 얻는 것, 기도하지 않던 사람이 다시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 서로 미워하던 사람들이 화해하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귀한 성장입니다.

특히 파리에서 교회를 세워 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고향을 떠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는 외로움과 경제적인 부담이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교회를 찾아오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잠시 머물다 떠나기도 합니다. 한 사람을 맞이하고, 믿음을 가르치고, 예배 공동체를 지켜 가는 데에는 끊임없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더라도 말씀을 전하십시오. 기도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십시오. 다음 세대에게 믿음의 유산을 전하십시오.

그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생명의 돌봄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6–7절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씀은 교회를 세우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는 심을 수 있습니다. 물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랑하고 가르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생명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결과를 우리 힘으로 만들어 내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열매가 더디다고 해서 자신을 정죄하지 마십시오. 눈에 보이는 성과가 부족하다고 사명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물론 화분을 돌볼 때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식물이 시들었다고 무조건 물만 많이 주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뿌리가 상했는지, 햇볕이 너무 강한지, 흙에 문제가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성도들의 형편을 살피며, 무엇이 공동체를 살리는 일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지만 그 생명을 돌보는 일에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지키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직 믿음이 어린 사람을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사랑으로 돌보는 것이며,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결과가 더디더라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둘째, 살아 있는 생명에는 시험과 공격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난해에 잘 자랐던 화분이 올해 다시 시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번 살아났다고 해서 앞으로 아무런 어려움도 겪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새잎이 돋아났다고 해서 폭염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꽃이 피었다고 해서 해충의 공격을 받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살아 있는 식물은 계속해서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그렇습니다.

과거에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해서 오늘의 시험을 저절로 이겨 내는 것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다고 해서 유혹과 낙심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를 위해 오랫동안 헌신했다고 해서 갈등과 실망을 경험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예상하지 못한 시험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1–12절에서 바울은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권면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툼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악과 거짓과 유혹에 맞서는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화분에 해충이 생기면 처음에는 작은 흔적만 보일 수 있습니다. 잎사귀 한쪽이 상하고 새순이 약해지다가, 어느 날 보니 식물 전체가 힘을 잃어 가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작은 문제가 큰 어려움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오해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대화하지 않고 마음속에 쌓아 둡니다. 서운함이 쌓이고 다른 사람의 말을 부정적으로 해석합니다. 결국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할 성도들이 서로를 경계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작은 유혹이었을 수 있습니다. 예배를 한 번 빠지고, 기도를 조금씩 미루고,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다가 어느 순간 신앙의 중심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낙심이었을 수 있습니다. 봉사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전도해도 열매가 보이지 않으며, 기도해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다가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자리 잡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나 하나 빠진다고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잠시 멈추어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물론 모든 어려움을 마귀의 직접적인 공격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몸이 지쳤을 수도 있고,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갈등에는 우리의 잘못된 판단이나 미숙한 의사소통이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동시에 문제의 원인을 정직하게 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특별히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어려움을 이용하여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사랑을 포기하게 하며,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유혹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고, 서로 사랑하지 못하게 하며, 끝내 믿음의 길에서 물러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6장 13절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여 악한 날에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은 시험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믿음은 시험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교회가 든든히 서 간다는 것은 어려움이 전혀 없는 교회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말씀으로 돌아오고,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서로를 세워 주는 교회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오해가 생기면 사랑으로 대화해야 합니다. 죄와 거짓이 드러나면 말씀에 따라 바로잡아야 합니다. 지친 사람이 있다면 더 많은 일을 요구하기보다 쉴 수 있도록 돕고 짐을 나누어야 합니다.

사랑은 모든 문제를 없는 것처럼 덮어 두는 일이 아닙니다. 사랑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를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대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찾아올 때마다 마음에 새기십시오.

‘이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이 갈등 때문에 형제를 미워하지 않겠습니다. 이 낙심 때문에 기도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싸우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셋째, 서로의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이제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한 점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작품은 《첫걸음》(First Steps, after Millet, 1890)입니다. 이 그림은 반 고흐가 존경했던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작품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반 고흐는 1890년 생레미에서 머물던 시기에 밀레의 작품들을 자신만의 색채로 재해석했습니다. 이 작품은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림을 보면 정원에서 한 아이가 첫걸음을 내딛으려 합니다. 아이의 몸은 아직 불안정합니다. 혼자서 걷기에는 다리에 힘이 부족하고,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일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 앞에는 아버지가 두 팔을 내밀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며 몸을 낮추고 있습니다. 아이가 비틀거리더라도 받아 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곁에서는 어머니가 아이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아이가 강해서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연약하지만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기에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아이는 아직 걷는 법을 완전히 배우지 못했습니다.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다시 일어서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첫걸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향해 두 팔을 내민 아버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믿음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도 처음부터 믿음이 강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 작은 시험 앞에서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넘어지고 실패하며,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힘조차 없을 때에도 말씀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시편 37편 24절은 의인이 넘어질지라도 아주 엎드러지지 않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소망이 아닙니다. 넘어져도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이 소망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강한 것이 소망이 아닙니다. 연약할 때에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이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믿음이 약해졌다고 해서 절망하지 마십시오.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자리를 떠났다면 다시 기도하면 됩니다. 예배에서 멀어졌다면 다시 예배의 자리로 돌아오면 됩니다.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회개하고 화해를 위해 손을 내밀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벽한 사람이 된 다음에야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연약한 우리를 사랑하시며, 그 사랑 안에서 성장하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교회는 믿음의 첫걸음을 내딛는 사람을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아직 믿음이 어린 사람에게 성숙한 사람과 똑같은 모습을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실수한 사람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지쳐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어떤 성도는 오랜 신앙생활을 했지만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처음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알아 가는 중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봉사하다가 지쳐 잠시 쉬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사람을 쉽게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믿음이 없다.’

‘저 사람은 아무리 도와주어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약할까?’

이렇게 말하기보다 먼저 물어야 합니다.

‘무슨 어려움이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함께 기도해도 될까요?’

갈라디아서 6장 2절은 서로의 짐을 지라고 말씀합니다.

교회는 잘 자라는 화분만 전시하는 정원이 아닙니다. 시들어 가는 화분도 살피고, 약해진 생명도 돌보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함께 애쓰는 공동체입니다.

물론 우리가 모든 사람을 우리 뜻대로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하고 도와주어도 그 사람의 선택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필요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진실하게 권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으며 사랑의 손길을 거두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넘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으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낙심했을 때 말씀으로 위로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연약했을 때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그런 손길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교회를 세워 가는 과정에서 한 사람의 믿음이 자라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새가족이 공동체에 정착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음 세대가 믿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한 번의 설교로 모든 사람이 변화되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한 번의 전도로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갖게 되리라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사랑으로 돌볼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셨듯이, 우리도 서로의 손을 잡아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맺는말: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믿음의 열매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화분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작년에 말라 죽을 것 같던 화분은 새 흙과 거름을 얻고 물을 공급받으며 다시 살아났습니다. 새잎이 돋아났고 꽃이 피었습니다.

그러나 올해의 폭염과 해충으로 다시 시들어 가는 화분들이 생겼습니다. 저는 지금도 화분들을 살펴보며 물을 줍니다. 과연 살아날까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 모습 속에서 교회를 세우는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기도의 은혜를 주시며, 서로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 공동체를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때로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났고, 때로 낙심했지만 다시 기도했습니다.

그렇다고 앞으로 모든 일이 순조롭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교회에도 어려움이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시험이 있을 것이고, 사람 사이의 갈등과 현실적인 부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시들어 간다는 이유로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단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의지만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6장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진리와 의로 무장하고, 믿음의 방패를 들며,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길입니다.

말씀을 놓지 마십시오. 기도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예배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서로를 미워하는 대신 사랑으로 권면하십시오. 지쳐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손을 내미십시오. 열매가 더디다고 사명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혹시 지금 여러분의 믿음이 시들어 가고 있습니까?

다시 말씀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기도의 자리를 회복하십시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도움을 구하십시오.

혹시 교회를 위해 수고하다 지쳐 있습니까?

혼자 모든 짐을 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서로의 짐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께 새 힘을 구하십시오.

혹시 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작은 순종부터 시작하십시오. 한 사람을 사랑하고,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십시오.

우리가 모든 화분을 반드시 살릴 수는 없습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우리의 뜻대로 변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생명을 사랑으로 돌보고, 믿음으로 견디며, 필요한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심고 물을 주어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수고를 하나님께 맡기며, 결과가 더디더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들어도 다시 살아나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서십시오. 시험 앞에서 믿음으로 굳게 서십시오.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십시오.

우리의 교회가 강한 사람만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약한 사람이 힘을 얻고, 낙심한 사람이 소망을 찾으며, 믿음의 첫걸음을 내딛는 사람이 사랑으로 환영받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심은 믿음의 씨앗이 하나님의 때에 열매를 맺을 것을 믿으며, 끝까지 예배하고 기도하며 사랑으로 섬기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시들어도 다시 살아나는 믿음, 시험을 이기고 든든히 서는 믿음, 서로를 붙들어 함께 자라는 믿음.

이 믿음이 우리 모두의 믿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