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 올라가면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성심대성당을 만날 수 있습니다. 프랑스어로는 *Basilique du Sacré-Cœur*라고 부릅니다.
그 성당의 제단 뒤편에는 보는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거대한 모자이크가 있습니다. 1923년에 공개된 이 작품은 올리비에 메르송(Olivier Merson), H. M. 마뉴(H. M. Magne), R. 마르탱(R. Martin)과 관련된 작품으로, 약 475㎡에 이르는 대형 모자이크입니다. 작품 속 예수님은 부활하신 모습으로 흰옷을 입고 두 팔을 활짝 펼치신 채, 빛나는 황금빛 심장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그 작품을 바라보면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심장은 지금 무엇을 향해 열려 있는가?”
예수님의 두 팔은 사람들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그분의 심장은 사랑을 상징합니다. 죄와 상처를 가진 사람, 외로운 사람, 실패한 사람,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을 향한 사랑입니다.
물론 우리는 작품 자체를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작품을 통해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심장이 그렇게 사랑으로 뛰고 있다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 교회의 심장은 무엇을 향해 뛰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무엇 때문에 기뻐합니까? 무엇 때문에 아파합니까? 누구를 위해 기도하고, 누구를 위해 문을 열어 두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 질문을 존 웨슬리 목사의 교회론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에베소서 4장 15-16절은 교회가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며, 각 지체가 서로 연결되어 사랑 안에서 몸을 세워 간다고 말씀합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방향은 세상의 성공 기준이나 사람의 취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에 의해 결정되어야 합니다.
존 웨슬리는 교회를 단순히 건물이나 조직으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교회를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공동체로 이해했고, 그 공동체 안에서 신자들이 함께 은혜를 받고 거룩함으로 자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지만, 단지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성심대성당의 모자이크에 나타난 예수님의 열린 두 팔을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팔을 벌리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부르시고, 병든 사람을 고치시고, 사회에서 멸시받던 사람들과 식탁을 나누셨습니다. 십자가에서는 원수까지 용서하시는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그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신앙의 연륜이 다른 사람도 있고, 문화와 언어가 다른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강해 보이고, 어떤 사람은 아직 많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저 사람은 왜 나와 다를까?”가 아니라,
“예수님이라면 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실까?”
교회의 심장은 사람을 밀어내는 마음이 아니라 품어 주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정죄하는 마음이 아니라 회복을 바라는 마음이어야 합니다.파리감리교회가 그리스도의 심장을 품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웨슬리의 교회론에서 특별히 주목할 부분은 신앙생활을 혼자 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웨슬리는 감리교 운동 안에 소그룹 모임을 조직했습니다. 그중 클래스 미팅(Class Meeting)은 성도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신앙의 형편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며 기도하는 자리였습니다. 이러한 모임은 단순한 친목 활동이 아니라 서로의 신앙을 살피고 사랑 안에서 성장하도록 돕는 구조였습니다. 웨슬리가 중요하게 여긴 질문을 오늘 우리의 말로 바꾸어 보면 이렇습니다.
“요즘 당신의 영혼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교회에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합니다.
“이번 주에 예배에 참석하셨습니까?”
“맡은 봉사는 잘하고 계십니까?”
“기도회에 나오셨습니까?”
모두 필요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질문이 있습니다.
“요즘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마음속에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 괴롭지는 않습니까?”
“기도할 힘조차 없을 만큼 지쳐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파리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은 더욱 중요할 수 있습니다.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는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있습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 가정의 문제, 자녀의 미래, 직장과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마음이 무거운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웃으며 인사하지만 속으로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성경 구절 하나를 알려 주는 것으로 모든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되, 필요하다면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꾸준히 안부를 물어야 합니다.
성심대성당의 예수님이 두 팔을 펼치고 계신다면, 우리도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웨슬리의 정신을 오늘 우리 교회에 적용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사람을 평가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의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살아나도록 돕는 곳입니다.”
한 사람의 아픔을 함께 짊어지고, 한 사람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의 손을 붙잡아 주는 교회. 바로 그런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를 더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는다는 것은 단지 서로에게 친절하게 대한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웨슬리 신학에서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화(聖化)**입니다.
성화란 예수님을 믿은 후 우리의 삶이 성령의 역사로 변화되어, 점점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자라 가는 것입니다.
웨슬리에게 거룩함은 개인의 마음속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나타나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설명하면서 해를 끼치지 않고, 선을 행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방편을 부지런히 사용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 거룩해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른 사람보다 성경 지식을 많이 갖는 것만이 아닙니다. 기도를 오래 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예전에는 화를 쉽게 내던 사람이 이제는 한 번 더 참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쉽게 이야기하던 사람이 이제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만 가까이하던 사람이 이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마음을 닫던 사람이 이제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함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거룩함은 사랑이 우리의 성품과 관계와 행동 속에 뿌리내리는 것입니다.
성심대성당의 황금빛 심장을 다시 떠올려 봅시다.
예수님의 사랑은 아름다운 상징으로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 사랑은 십자가에서 희생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용서하지 않는다면, 거룩함을 이야기하면서 약한 사람을 무시한다면,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하면서 다른 사람의 아픔에 무관심하다면, 우리는 아직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을 충분히 변화시키도록 내어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웨슬리가 꿈꾸었던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만 모이는 교회가 아닙니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함께 변화되어 가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파리감리교회는 서로의 부족함을 덮어 주기만 하는 교회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 서로를 세워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잘못했을 때는 겸손히 인정하고, 상처를 주었을 때는 용서를 구하며, 갈등이 생겼을 때는 상대방을 이기려 하기보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함께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누가 옳은 사람인지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더 닮아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심장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만을 위해 뛰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고,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 역시 예배와 말씀, 기도와 성도의 교제를 중요하게 여겼지만, 그 열매는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웨슬리와 초기 감리교인들은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며, 사람들의 실제 삶 속에서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은 함께 말씀을 배우고 기도했습니다. 서로의 필요를 돌아보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예배당 안에서만 확인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삶의 자리에서 드러났습니다.
오늘 파리감리교회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모였지만, 한국인만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프랑스인 이웃이 있고, 국제결혼 가정이 있으며,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이 있습니다. 신앙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교회에 실망하여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것은 교회의 규모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실제로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외로운 사람에게 먼저 인사하는 것, 어려움을 겪는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 것, 다음 세대가 믿음 안에서 자라도록 돕는 것,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실제로 섬기는 것, 복음을 진실하고 겸손하게 전하는 것.
이 모든 일이 교회가 세상으로 내보내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심장을 품었다면, 그 심장은 교회 안에서만 뛰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사랑이 교회 문을 넘어 파리의 거리와 가정과 일터까지 흘러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몽마르트르 성심대성당의 모자이크를 통해 두 팔을 펼치신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존 웨슬리의 교회론을 통해 우리가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지 생각했습니다.
이제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우리 교회의 심장은 무엇을 향해 뛰고 있습니까?
사람이 많아지는 것만을 향해 뛰고 있습니까?
우리의 계획이 성공하는 것만을 향해 뛰고 있습니까?
아니면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님을 만나고, 한 영혼이라도 더 회복되고, 한 가정이라도 더 사랑 안에서 세워지기를 바라며 뛰고 있습니까?
교회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건물의 크기나 프로그램의 수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안에 얼마나 살아 있는가에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기도하고, 서로를 대할 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하며, 세상으로 나갈 때 그리스도의 긍휼을 품고 나간다면,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심장을 드러내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파리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좋은 교회를 찾는 사람에 머물지 맙시다. 우리가 함께 좋은 교회를 세워 갑시다.
내가 먼저 사랑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고, 내가 먼저 기도하고, 내가 먼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다가갑시다.
그리스도의 심장을 품은 교회, 서로의 영혼을 돌보는 교회, 함께 거룩해지는 교회, 파리를 향해 사랑을 흘려보내는 교회.
이것이 우리가 세워 가야 할 교회입니다.
웨슬리의 신앙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모두가 이렇게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하는 교회에 그치지 않고, 그 사랑을 살아 내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심장이 주님의 심장과 함께 뛰게 하시고, 우리의 손과 발이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게 하소서.”